수요성서연구 게시판 - <시편산책> 시편 33편

<시편산책> 시편 33편

2014.03.25 14:54

만천댁 조회 수:1182

설교 날짜  
성경 본문  
말씀 선포자 유대식 목사 
녹음 파일  

시편산책 (시 33편)

시 33:1-22절

인간은 누구나 ‘종교성’(religiosity)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지식이 있고 문화가 있든, 무식하고 미개인이든 인간은 신적 존재를 더듬어 찾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행 17장에서 바울아덴아레오바고 광장에서 아덴사람들희랍의 철학자들에게 “알지 못하는 신”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였습니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게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문제는 어떤 존재를 자신이 섬기는 신적 존재로 선택하느냐에 있습니다. 인간이 무엇을 절대화하고 신뢰하느냐에 따라서 그의 인생의 방향과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시편은 저자가 누구인지, 어떤 노래인지 표제어가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모두 22절로 구성되어 있는데, ‘22’라는 숫자는 히브리알파벳의 숫자와 같습니다, 따라서 이 시를 우리는 ‘알파벳의 시’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찬양의 가장 순수한 형태가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 및 그분의 사역을 찬송하는 것이라고 볼 때, 오늘의 시편은 ‘찬양 시’의 전형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창조, 주권, 심판, 구원 등의 구체적인 증거를 들어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의 제자, 성도(聖徒)’라는 신분을 잊고서 이 세상을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물론 게 중에는 이러한 신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분들도 계실 것이고, 알면서도 세상사는 데 걸림돌이 될 것을 두려워하여 내세우지 못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분에 대해 깊은 깨달음을 갖고서 살아가는 사람은 그 신분에 걸맞게 살아갈 뿐만 아니라, 그 신분을 자랑합니다. 이스라엘백성은 자기들이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 신분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을 때 저들은 아무 가리낌 없이 우상 숭배의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은혜로 주어진 신분의 가치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그 신분에 어울리는 삶을 살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잘못된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의 시편에서도 시인은 그것을 노래하며 교훈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찬송하고, 그분께 감사를 드리고, 그 분을 경외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 복된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2절 말씀에서 이런 고백을 드리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 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그렇다면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백성이 왜 복이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을 살피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13-15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굽어보사 모든 인생을 살피심이여, 곧 그가 거하시는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들을 굽어 살피시는 도다. 그는 그들 모두의 마음을 지으시며, 그들이 하는 일을 굽어 살피시는 이로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3장에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안다.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들의 고통을 보고, 부르짖음을 듣고, 근심을 알고, 애굽 사람들이 이스라엘백성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다 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저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모세를 부르셨고, 결국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주목하여 보고 계십니다. 아무도 안 보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다 보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힘들게 사는 것을 다 보고 계십니다. 밤에 홀로 잠 못 자고 눈물 흘리는 것을 다 보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고통을 보고 계시고,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것을 다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지금 바로 내 곁에 계십니다. 그것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이것은 시인의 고백이지만, 하나님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끄실 때 그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여호와 신앙에 의해 나라를 이끌어갈 때는 축복과 번영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서 범죄 할 때는 주변의 이방나라들을 형벌의 도구로 삼으셔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셨습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경천자(敬天者)는 흥(興)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亡)한다”는 사상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경배하는 사람은 흥하고 하늘을 거역하는 사람은 망한다는 사상입니다. 그래서 죄를 범하는 사람을 볼 때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고 야단을 쳤습니다.


앙드레 슈마는 말하기를 “해방과 자유의 제일 원리인 하나님을 거부한 기술문명은 살인문명이 될 것이며, 하나님을 거절한 모든 정치와 경제 성장과 문화발달은 살인병기를 만들어 낼 것이며, 지옥의 건설 자가 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