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성서연구 게시판 - <시편산책> 시편 23편

<시편산책> 시편 23편

2013.10.22 14:14

만천댁 조회 수: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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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시 23:1-6 
말씀 선포자 유대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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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산책 (시 23편)

시 23:1-6절

지초(芝草)와 난초(蘭草)의 교제라는 뜻으로, 벗 사이의 맑고도 고귀한 사귐을 이르는 말을 지란지교(芝蘭之校)라고 부릅니다. 시인이며 대학교수인 유안진씨의 ‘지란지교(芝蘭之校)를 꿈꾸며’라는 수필이 있습니다.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 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시작하는 수필입니다.

 

시인은 자신의 인생에 동반자가 되어 줄 수 있는 친구 하나에 대한 갈망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바라는 그 친구의 모습이 고정된 모습이 아니라, 삶의 상황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을 가진 친구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흰 눈 속 참대 같은 기상을 지녔으나 들꽃처럼 나약할 수 있고, 아첨 같은 양보는 싫어 하지만 이따금 밑지며 사는 아량도 같기를 바란다. 우리는 눈물을 사랑하되 헤프지 않게, 가지는 멋보다 풍기는 멋을 사랑하며, 냉면을 먹을 때는 농부처럼 먹을 줄 알며, 스테이크를 자를 때는 여왕처럼 품위 있게, 군밤은 아이처럼 까먹고, 차를 마실 때는 백작 부인보다 우아해지리라. 천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는 오동나무처럼,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자유로운 제 모습을 잃지 않고 살고자 애쓰며 서로 격려하리라”라는 바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친구를 놓고 다양한 캐릭터를 원하는 마음이 여기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사람은 욕심이 많은 존재임이 분명합니다.

 

자식입장에서도 아버지는 아버지의 모습만을 갖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아버지도 친구처럼, 그리고 어떤 때는 형님과 같기를 바랍니다. 목회자에 대한 기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이지만, 때로는 아버지처럼, 때로는 친구와 같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맞추어줄 수 있는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형편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오시는 분이십니다. 때로는 혼내시는 하나님이시기도 하지만, 우리가 지쳐 있을 때는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으로 다가오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이런 다양한 모습은 우리에게 큰 힘이 됩니다.

 

오늘본문시편 23편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시입니다. 아마 시편이란 책이 성경에 어디에 있는지, 어떤 책인지도 몰랐던 어린 시절에도 이 시를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스펄전목사시편 23편을 일컬어 ‘시편의 진주’라고 하였습니다. 그동안 시편 23편은 병든 자와 고난당하는 이들에게 위로를 주는 시편으로 많이 읽혀지고 묵상되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시편 23편에 나와 있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시편 23편 1절에 보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시인은 하나님을 목자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명령만을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삶 속에서 목자처럼 인도하시는 분이라는 겁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양을 치는 목자를 쉽게 볼 수 있었는데, 하나님이 바로 그런 분이라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먼저 양이라는 동물의 속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양이라고 하는 동물은 지구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동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양은 염소나 말, 혹은 다른 짐승과는 달리 방향 감각이 거의 없습니다. 다른 짐승들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반드시 자기 집을 찾아 돌아오지만, 양은 조금만 집에서 멀리 떨어지면 집을 찾아오지 못합니다.

둘째, 양은 습관의 동물입니다. 우선, 광야 가운데 나 있는 줄을 볼 때에 이러한 사실은 금방 드러납니다. 그 넓은 광야에 줄이 그어져 있는데, 이 줄은 양의 성격을 잘 대변해줍니다. 수십, 수백 마리 되는 양이 있어도 목자가 앞서서 가면 양은 뒤따라가는데, 멋대로 진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앞에 가고 있는 양을 반드시 뒤 따라 가기 때문에 광야여기저기에 양떼들이 지나다닌 줄이 나있습니다.

셋째, 양은 좋은 풀이 있을 때에는 절대로 다른 양과 싸우지 않지만 풀이 좋지 않거나 빈약하면 사나워지는 동물입니다. 따라서 양들이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광야가 아닌 푸른 풀밭으로 인도하는 목자가 존재함으로 가능합니다.

 

이러한 양의 습성은 인간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인생을 살아도 향방 없이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또한 옛 사람의 모습, 옛 습관 버릇을 쉽게 청산하지 못하고 살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 있어서 풍요롭고 고난이 없을 때에는 누구나 인격자이고 누구나 그리스도인으로 살지만, 힘들고, 어려우며, 고난이 닥쳤을 때에는 비인격적인 모습도 서슴지 않으며,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모습으로 살 때가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의 목자가 되심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의 고백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그가 나를 누이시며, 그가 나를 인도하시며, 그가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그가 나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고, 그가 나를 나와 함께 하시며, 그가 나에게 상을 차려 주심을 분명히 고백하고 있습니다, 양의 주인은 목자이듯이 우리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한 두 사람의 친구를 사귀더라도 때로는 매화처럼, 때로는 오동나무처럼, 때로는 농부처럼, 때로는 아이처럼, 때로는 백작처럼, 때로는 왕과 같기를 요구합니다. 사람들은 모든 요구를 들어줄 수 없으나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삶 가운데 맞춤형 하나님으로 다가오셔서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하나님은 비단 목자, 왕, 교사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가운데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오십니다. 우리가 길을 잃었을 때는 목자처럼 다가오실 것이고, 어려움을 당할 때는 능력 있는 왕처럼 다가오실 것이며, 지혜가 필요할 때는 교사처럼 다가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따라가고 그분의 도움을 구한다면 하나님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지란지교를 꿈꾸며’ 수필 중에 “나는 많은 사람과 사랑하고 싶진 않다. 많은 사람과 사귀기도 원치 않는다. 나의 일생에 한두 사람과 끊어지지 않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으로 죽기까지 계속되기를 바란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서적으로 우리는 양과 목자를 쉽게 볼 수 없기에, 하나님이 나의 목자라는 고백이 쉽게 다가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그러나 저의 마음에는 “나의 일생에 주님과 끊어지지 않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으로 죽기까지 계속 되기를 바라”는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을 함께 꾸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