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성서연구 게시판 - <시편산책> 시편 30편

<시편산책> 시편 30편

2013.12.30 14:23

만천댁 조회 수:16840

설교 날짜  
성경 본문 시 29:1-12 
말씀 선포자 유대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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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산책 (시 30편)

시 29:1-12절

지난 몇 주간은 ‘사람의 도움’이라는 물음으로 많은 생각을 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우리교회의 산적한 문제들, 저 개인적인 문제들, 그리고 어려움을 당한 절친한 친구목사의 일들이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결론은 “진정한 도움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의 시편도 ‘도움’이라는 주제를 생각하게 하는 시편입니다. 다윗본문 10절에서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나의 돕는 자가 되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다윗도 극심한 환난 가운데서 진정으로 자신을 도울 자가 오직 주님 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어떤 모습으로 누리를 도우시는 분이십니까? 오늘시편을 중심으로 말씀을 함께 살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1.나의 돕는 자가 되시는 주님은 나를 끌어내십니다.

본문 1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 내사 내 대적으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3절 말씀에서는 내 영혼을 스올로부터 끌어내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끌어내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달라’는 ‘우물에서 끌어올리다’는 뜻으로 다윗이 우물과 같은 깊은 곤경에 처해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그런 깊은 곤경에 내 버려두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탄이 기뻐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를 대적하여 어떻게 해서든지 죄를 짓게 만들고, 그 일로 인하여 좌절하고 절망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마치 두레박으로 물을 끌어 올리듯이 우리를 그 사지에서 끌어내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의 손은 하나님을 향하여야 합니다.

 

2. 나의 돕는 자가 되시는 주님은 나를 고치십니다,

본문 2절을 보면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라고 다윗은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고치셨다’는 말은 “잠시 실패가 있었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다시 회복되었음”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범한 이 “잠시 동안의 실패”는 무엇인가? 그 대답을 우리는 오늘본문 6-7절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즉, 다윗은 한때 자신의 형통에 대하여 자신 만만했습니다. 그 같은 상황이 오래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한 마디로 그는 자신의 형통함으로 인하여 교만했습니다. 결국 이 범죄로 말미암아 주님께서는 얼굴을 다윗에게 가리셨고, 그로 인하여 다윗은 근심하였던 것입니다(7절). 이 얼마나 귀한 근심입니까? 세상적 근심이 아닌 회개에 이르게 하는 경건한 근심이니 말입니다. 이러한 근심 가운데서 다윗은 주님께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여호와여 들으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를 돕는 자가 되소서.”(10절).

 

우리는 다윗처럼 아니 다윗보다 더 실패를 많이 하는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것은 다윗과 같이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긍휼을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실패를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회로 삼아야 하며, 또한 그러한 가운데 하나님의 긍휼을 체험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의 긍휼하심을 힘입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진정한 회개(repentance)가 없이는 진정한 회복(reconciliation)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3.나의 돕는 자가 되시는 주님은 나에게 기쁨을 주십니다.

본문 5절을 보면 “그의 노염은 잠간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고 다윗은 노래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건지심(구원)을 받고 치유함을 받은 후 깨달은 진리는, “슬픈 일보다 기쁜 일이 사실 많다는 것”입니다. “그가 난처한 자리에 빠져 고생한 것보다, 거기서 건짐이 되어 누리게 된 기쁨의 분량은 더욱 많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과연 슬픈 일보다 기쁜 일이 더 많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런데 우리 인간의 본능은 기쁜 일보다 슬픈 일을 더 잘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장미의 향기는 기억하지 못하나 그 가시에 찔린 것은 오랫동안 기억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노염은 잠깐이고 그의 은총은 평생입니다.

 

고통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잠깐의 눈물과 슬픔을 경험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눈물과 슬픔은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더 큰 기쁨을 맛보게 하는 기초를 제공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은 고통의 맛은 한약처럼 입에 쓸지 모르지만 우리에게 영약이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결국 우리도 다윗처럼 11절의 말씀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함께 고백하겠습니다.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