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성서연구 게시판 - <시편산책> 시편 29편

<시편산책> 시편 29편

2013.11.14 15:43

만천댁 조회 수:1475

설교 날짜  
성경 본문 시 29:1-11 
말씀 선포자 유대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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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산책 (시 29편)

시 29:1-11절

올해는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린 해로 기억될 것입니다.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비도 많이 내렸습니다. 사무실에 있는 복합기도 번개를 맞아서 기계가 고장 나는 수난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유명한 설교가 스펄젼 오늘본문시 29편을 가리켜 “천둥번개가 있는 밤에 읽기 좋은 시”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는 시인들로 하여금 ‘인생의 허전함’이나 ‘애절한 이별’ 등을 노래하게 하는 감흥을 절로 일으킵니다. 하지만 그와는 대조적으로 ‘폭풍우’를 소재로 해서 쓴 시는, 물론 없지는 않겠지만, 제가 알고 기억하는 한도 내에서는 없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폭풍우의 강력한 힘을 목도하게 될 때에 사람은 일단 공포심을 느끼게 되기 마련이며 그것은 시를 짓게 만드는 서정적인 감정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의외로 그런 ‘폭풍우’를 소재로 한 시가 한 편 있는데 바로 오늘본문시편 29편입니다. 이 시는 다윗의 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세상의 시인들이 별로 소재로 삼지 않는 대상을 두고 이 시를 썼을 뿐 아니라, 세상의 그 어떤 문학가들도 결코 느낄 수 없는 놀라운 영적 감흥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1. 먼저 그리스도인은 자연계시를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발견해야 합니다.

다윗은 번개와 천둥을 동반한 아주 강력한 우렛소리를 “여호와의 소리”라고 표현하면서 매절마다 자기가 지금 목도하고 있는 자연계의 장관(壯觀)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기상관측이래의 최고로 많은 비가, 여름장마 이후로 내린 비로는 104년 만의 폭우라고 기상학자들은 말을 합니다. 과학과 기술이 엄청나게 발전된 시대에 사는 현대인들조차 대자연의 위력 앞에서는 그저 ‘이거 장난이 아니구나.’라고 벌벌 떨 수밖에 다른 아무 도리가 없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것을 대하는 자세는 달라야 합니다. 지금 그런 위엄스럽고도 압도적인 대자연의 소리와 광채와 진동을 목도하고 체험하면서 다윗9절 하반 절에서 무엇이라 고백하고 있습니까?

 

그의 성전에서 그의 모든 것들이 말하기를 영광이라 하도다.”

 

여기서 “그의 성전에서 그의 모든 것들”이라고 번역되어 있는 말은 무슨 ‘물건이나 동물’이 아니라 ‘그 성전에 모여 있는 모든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즉 세상의 불신자들은 자연의 위력을 보면서 그저 놀라고 두려워할 뿐이지만, 하나님의 성전에 모인 성도들은 이런 비와 바람과 번개와 천둥과 하늘과 땅과 수풀과 들짐승들을 통하여 그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살아계심’과 ‘당신의 전능하심’을 스스로 선포해 주시는 자연계시인 줄을 깨달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 결과 불신자들은 자연 그 자체를 두려워하며 숭배까지 하게 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똑같은 자연을 보면서도 오직 그 대자연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맥락에서 다윗은 이 시편 서두에서부터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라고 선포했던 것입니다. “돌리고 돌릴지어다.”라는 표현은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권세가 있는 왕이라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다 한갓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누구랄 것도 없이 이 시편을 쓴 다윗부터가 바로 그런 왕이었습니다. 웬만한 사람이었다면 자신의 영광과 능력에 도취해서 살기 십상인 자리에 다윗 자신도 올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만 돌리고 자신은 그저 거룩한 옷을 입고 그 앞에 엎드려 절하는 겸손을 지킬 줄 알았으며, ‘폭풍우’를 바라보면서도 그처럼 절대주권자를 경외하는 신앙을 새롭게 되새길 줄 아는, 정말 멋진 영감의 소유자였던 것이었습니다.

 

2. 우리를 평강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확신해야 합니다.

10절11절에서 다윗은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원하도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라고 찬송하고 있습니다.

 

불신자들은 홍수 앞에서 그저 망연자실할 뿐입니다. 홍수가 한번 쓸고 지나가면 집과 전토와 재산을 순식간에 다 잃어버릴 뿐 아니라 엄청난 인명피해를 입게 되지만 사람으로서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사람은 그런 홍수 앞에서 인간의 무력함을 절실히 느낄 수밖에 없으며 누구나 다 그저 절망, 공포, 비애에만 사로잡힐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무서운 자연재해를 통해서도 오히려 ‘’을 얻고 ‘평강의 복’을 누리게 된다고 다윗은 노래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홍수의 위력 그 자체에 압도당하지 않고 그런 홍수까지도 마음대로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자신의 진정한 왕으로 모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큰 바람과 물결아 잔잔해 잔잔해 / 사납게 뛰노는 파도나 저 흉악한 마귀나 아무 것도 주 편안히 잠들어 누신 배 뒤 엎어 놀 능력이 없도다”라고 찬송하는 것도 바로 그런 신앙고백이 아니겠습니까? 홍수 아니라 무슨 공상영화에서 등장하는 ‘유성 충돌’ 따위의 대재앙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그 모든 ‘우주 위에 좌정하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평강의 복을 내려 주십니다. 복 중에 가장 큰 복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평강의 복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