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성서연구 게시판 - <시편산책> 시편 22편

<시편산책> 시편 22편

2013.10.10 15:01

만천댁 조회 수:972

설교 날짜  
성경 본문 시 22:1-11 
말씀 선포자 유대식 목사 
녹음 파일  

?

시편산책 (시 22편)

시 22:1-11절

우리말에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속담을 ‘때리는 원수보다 침묵하는 친구가 더 밉다.’라고 응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원수는 그렇다 치더라도 내 평생의 친구로 알고 지내던 사람이, 내가 당하는 고난을 그저 방관만 하고 있다면, 원수보다도 그 사람 때문에 마음이 더 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으로 이 땅에서 살지만, 그런 상실감을 느낄 때도 분명 있을 수 있습니다. 전혀 예기치 않은 일을 만났을 때, 열심히 살았는데 삶의 결과가 좋지 않을 때, 하나님백성으로서 누구보다도 신앙적으로 살았는데 고난이 찾아왔을 때, 좋은 것을 기대한 것과 비례하여 우리의 상실감은 더 클 수 있습니다.

 

오늘시편 22편다윗이 바로 이런 일을 당하고 있습니다. 본문 6-8절을 보면 다윗은 엄청난 고통의 상황을 당하고 있습니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이런 고통의 상황에서 시인은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이런 부르짖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하나님은 다윗에게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은 다윗에게 마음의 상처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지금 자신이 당하고 있는 상황을 해결해주시고, 고통 가운데에서 구원해주실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저 침묵하셨습니다. 다윗은 이런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는 지금 원수들의 공격이 아니라 응답하지 않는 하나님으로 인해 상처 받고 있습니다.

우리들에게도 이런 상황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살다보면 사람들로부터 비방과 모욕을 당하거나, 애매하게 고난을 당하는 때가 왜 없겠습니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할 때, 내 친구의 위로나 하나님의 위로가 없을 때, 그래서 하나님이 너무나 멀리 계시다고 느껴질 때가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오늘시편은 우리가 어떻게 그런 상황을 대처할 수 있는가에 대한 바른 길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1.문제를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 같을지라도 하나님을 피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향해서 마음을 닫아버리고 상대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지금까지 믿어왔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닫아버리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어찌됐든 하나님과 해결해보려고 하는 믿음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만져주심을 바라며 그분께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통 중에 있을 때, 하나님께 나아가서 “왜 하나님은 이 상황을 그저 모른 체하고 계십니까? 이 일을 통하여 저에게 무엇을 말씀하려고 하시는 겁니까?”라며 솔직히 자신의 괴롭고 섭섭한 심정을 털어 놓는 것은 결코 비 신앙적인 태도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관계라면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다윗과 하나님의 관계는 오랜 시간 쌓여온 신뢰와 사랑의 관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하나님께 대해 자신의 심정을 있는 그대로 호소하고 토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의 고통이 너무도 커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절규하셨습니다. 고통 받는 심정을 있는 그대로 호소하셨던 것입니다. 이런 호소는 믿음 없는 소리가 아니라, 역설적으로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신뢰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절규하며 호소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자세에서 이것은 감사와 찬양 못지않게 중요한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선한 계획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탄식을 하고 있지만 오늘의 시편 곳곳에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의 심정은 비록 지금은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없지만 그분의 계획을 믿고 있습니다. 그 고통 가운데서도 다윗은 조상들을 건지셨던 하나님의 역사를 먼저 떠올렸습니다. 4-5절 말씀을 보면 “우리 조상들이 주께 의뢰하고 의뢰하였으므로 그들을 건지셨나이다. 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17살 이후로 엄청난 고통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이 때, 요셉의 입장에서는 “왜 하나님은 내게 주신 꿈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게 하시는 가?”라는 불평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요셉의 전 인생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모든 시련이 결국 요셉에게 축복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다윗의 일생을 다 알고 있는 우리는 다윗이 10년이나 사울에게 쫓겨 다닌 것이 그에게 얼마나 유익한 시간이었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또한 출애굽의 역사를 다 알고 있는 우리는 광야 40년 유랑의 세월이 모세이스라엘민족에게 얼마나 필요한 시간이었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의 요셉, 다윗, 모세이스라엘민족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비록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지나가고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best time(최적의 시간)에 best thing(가장 좋은 것)을 best way(최고의 방법)으로 역사하실 줄로 믿어야 합니다.

 

어려움을 만나는 것은, 우리 인생 누구에게나 일어났던 일이고, 일어나고 있는 일이며, 일어나게 될 일입니다. 따라서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어려움의 과정을 어떻게 보내느냐 입니다. 어려움의 과정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겪는

어려움의 과정이, 오히려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는 기회가 되기를 소원해야 합니다.

 

아무쪼록 오늘 수요일 저녁예배 시간에 이 자리에 함께 하신 우리 믿음의 가족 여러분들은 비록 지금 이 순간에는 하나님의 응답을 헤아릴 수 없어도, 우리를 향한 선한 계획이 있음을 믿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