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성서연구 게시판 - <시편산책> 시편 35편

<시편산책> 시편 35편

2014.07.11 14:42

만천댁 조회 수:2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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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시 35:1-28 
말씀 선포자 유대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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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산책 (시 35편)

시 35:1-28절

서울시교육감선거를 앞두고 곽노현 교육감이 상대후보자에게 사퇴를 조건으로 2억 원을 준 것이 사실로 밝혀져 구속 기소되었습니다. 그런데 검찰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여 법원에서 구속여부를 판단하던 때에, 서울시의회 임시회의에 곽교육감이 참석해, 한 장의 메모지를 열심히 읽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는데, 그 메모지에는 다름 아닌 구약성경 시편 35편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다 철저하게 계산된 행동이라는데 더 화가 났습니다.


곽교육감은 가톨릭신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의 동정심을 얻고, ‘나를 건드리면 하나님이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로 그것을 들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정말 신앙을 가진 자라면, 그리스도인의 기본인 회개나 반성의 모습, 그리고 투명한 양심을 보여주어야만 합니다. 양심적인 사람이었으면 진작 자진사퇴해야 옳은 일입니다. 곽교욱감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그를 구속기소하면 시민혁명을 일으키겠다고 이명박 정부를 협박하고 있으니, 정말 이 나라 교육계의 현실이 이정도 밖에 되지 않는가를 생각하면 침울해 지기까지 합니다. 아니 웃음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시편 35편은 인간적으로 얄팍한 술수를 쓰는 사람, 돈세탁하여 2억 원의 뇌물을 주는 사람, 야합과 권모술수에 능숙한 사람이, 자기를 시편의 기자와 동일시하며 읽을 수 있는 시가 아닙니다. 

 

오늘시편다윗이 자신의 대적들, 사울왕이나 자신에게 반란을 일으켰던 압살롬 혹은 그의 음모에 공모하였던 반역자들이 끈질기게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상황에서 지은 시입니다. 여기서 다윗을 대적하던 자들은 평소에 그가 믿고, 사랑으로 대하던 자들이었습니다.

세상에 괴로운 일이 많지만, 내가 믿고, 또한 전심을 다해서 사랑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는 일 만큼 괴로운 일도 없을 것입니다. 살아가며, 누구나 한번쯤은 그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저 또한 그러한 경험이 있었고, 그로인해 화도 나고, 상처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늘시편다윗이 그러한 상황에 있었습니다. 그가 의로움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함께 하는 이들에게 진심으로 마음을 다하여 저들이 힘들 때 기도해 주고, 아플 때 위로해 주었으며, 위로할 말이 없으면 함께 아파하던 다윗이었습니다. 13절 말씀에 그 내용이 기록되어 있죠. “나는 그들이 병들었을 때에 굵은 베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 내가 나의 침구와 형제에게 행함 같이 그들에게 행하였으며 내가 몸을 굽히고 슬퍼하기를 어머니를 곡함같이 하였도다.” 

 

하지만, 자신이 전심을 다했던 이들이, 그들의 욕심에 눈이 멀어, 나를 조롱하고, 나의 뒤에서 나를 위협하며, 헤하려고 계획하고, 나를 몰아내려 하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15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그러나 내가 넘어지매 그들이 기뻐하여 서로 모임이여, 불량배가 내가 알지 못하는 중에 모여서 나를 치며 찢기를 마지아니하도다. 그들은 연회에서 망령되이 조롱하는 자 같이 나를 향하여 그들의 이를 갈도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께서 악인들에 대하여 직접 나서서 그 세력들을 완전히 궤멸시키시고 진멸하실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여호와여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우소서.” 그러면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직접 방패도 잡으시고, 창도 잡으시며, 더 나아가 천사까지라도 동원하셔서 그들을 몰아내 주시기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8절 말씀에서 “멸망이 순식간에 그에게 닥치게 하시며, 그가 숨긴 그물에 자기가 잡히게 하시며 멸망 중에 떨어지게 하소서”라는 극단적인 표현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시편을 일반적으로 개인적인 ‘비탄 시’, 혹은 ‘기도 시’로 보기도 하지만, 성서학자들은 원수들의 진멸을 호소하는 ‘저주 시’로 보기도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의 묻기 어려운 신학적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오늘본문의 저주와 복수에 대한 기도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원수에 대한 사랑'과 모순되지 않는가?”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 즉 신정왕국이스라엘의 왕으로서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을 요청한 것이지, 결코 개인적인 증오심을 드러낸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10절에서 “내 모든 뼈가 이르기를 여호와와 같은 이가 누구냐? 그는 가난한 자를 그보다 강한 자에게서 건지시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노략하는 자에게서 건지시는 이라”고 고백한 것이며, 시의 마지막을 “나의 의를 즐거워하는 자들이 기꺼이 노래 부르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그의 종의 평안함을 기뻐하시는 여호와는 위대하시다 하는 말을 그들이 항상 말하게 하소서. 나의 혀가 주의 의를 말하며 종일토록 주를 찬송 하리이다.”라고 끝맺은 것입니다.     

스펄젼 목사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쇠망치를 들고 때릴 때,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견딜 수 있는 철 받침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쇠망치’는 환난과 핍박, 조롱과 모욕, 비방과 악담, 등 여러 가지일 수 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백성들인 우리를 계속해서 공격하고, 여러 종류의 ‘쇠망치’로 지금도 우리를 내리치고 있습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본문다윗도 마찬가지 상황이었습니다. 그 때 다윗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9절 말씀에 그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 영혼이 여호와를 즐거워함이여 그 구원을 기뻐하리로다.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고백이, 저가 이미 구원을 받은 후에 한 것이 아니라, 아직도 그의 원수들에게서 환난과 핍박, 조롱과 모욕, 즉 쇠망치로 내리침을 받는 상황에서 고백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그것은 오직 믿음으로만 고백할 수 있는 차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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