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성서연구 게시판 - <시편산책> 시편 14편

<시편산책> 시편 14편

2013.09.25 14:16

만천댁 조회 수: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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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시 14:1-7 
말씀 선포자 유대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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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산책 (시 14편)

시 14:1-7절

지난 2000년 2월, 미국 클린턴대통령은 특별기자회견을 통해 미국의 과학자들이 인간유전자지도를 발견했다는 중대발표를 했습니다. 인체세포내의 유전자와 그것을 구성하는 30억 개의 배열지도를 해독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인류는 치명적인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며, 수명을 더욱 연장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클린턴은 ‘게놈프로젝트(유전체프로젝트)에서 발견된 인간유전자지도는 1492년, 콜럼부스의 아메리카대륙발견과 견줄 수 있는 위대한 발견이다’라고 칭찬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발견보다 더 위대하고 영원한 발견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계심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은 유전자를 발견하는 것보다 수천, 수만, 수억만 배 더 위대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유전자를 발견한 과학자 보다 일찍이 하나님을 발견하고 이 저녁시간 이곳에 나와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있는 저와 여러분이 더 위대한 존재입니다.

 

오늘시편본문은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세상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신앙인들의 삶에 대해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는 다윗이 이 시를 지었을 때도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의 선민이라 큰소리쳤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제대로 믿는 풍토는 아니었음을 반증해줍니다. 비록 똑같은 세상을 살아가지만 사람마다 느끼는 태도는 다를 수 있습니다.

 

1962년 2월 20일 인류최초의 우주인이었던 소련유리 가가린은 ‘우주 어디에도 하나님은 없었다!’고 우주여행의 소감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5개월 후인 7월 10일에 미국의 최초우주인 글렌 중령은 우주여행 뒤에 ‘우주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였다!’고 고백했습니다.

 

같은 우주를 보고 와서 한 사람은 하나님이 없다고 했고, 다른 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시인은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며 그것을 꿋꿋이 지켜 나가고 있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1-3절에는 히브리어의 부정적인 표현인 ‘에인’ 이라는 말이 네 번이나 반복해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1절을 보면, ‘하나님이 없다, /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3절에도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 하나도 없도다.’ 그런데 여기서 첫 번째 ‘없다’는 말은 인간의 말입니다. 즉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아니면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없도다. 없으니, 없도다. 는 말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며 자신만만하게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도 동일하게 그들을 향해 ‘없다’라는 부정어를 세 번씩이나 사용하며, 앞으로 저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명백하게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시 102:25에서는 “주께서 옛적에 땅의 기초를 놓으셨사오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니이다.”라고 노래하고 있으며, 히 3:4절은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고백하고 있습니다.

 

간단한 진리지만 이것을 발견한다는 것은 참으로 위대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발견하면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함께 발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무신론은 단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부족이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 된다는데 그 심각성이 있습니다. 또한 무신론은 그 자체가 믿음입니다. 그렇게 믿고 싶다는 것입니다. 절대 기독교의 신은 믿고 싶지 않고, 또한 나의 죄악과 잘못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신론자들은 진리대로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변명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신을 만나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우리가 신을 찾는 것으로 그것을 ‘구도’라고 표현합니다. 기독교이외의 종교에서 주로 하는 수행방법입니다. 다른 하나는 신이 우리를 찾아오는 것으로 그것을 ‘계시’라고 합니다.

 

구도의 방법으로는 결코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인간은 오직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자신을 나타내 보여 주시는 계시의 방법만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의 더 큰 문제는 ‘신앙의 이중성’입니다. 하나님이 이세상의 주인이시고 살아계신 창조주라고 머리로는 믿고 받아들이지만, 실제의 삶 속에서는 내 스스로를 지혜롭게 생각하고, 나의 경험과 나의 능력과 나를 신뢰하면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묻기 보다는 매사에 나의 뜻을 관철시키려고만 합니다. 그러면서 항상 자신의 마음에 ‘나는 그리스도인이다’라고 이르지만, 스스로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오늘날 교회는 더 병들고 신음하는 것입니다. 아예 무신론자로 사는 것이 더 나을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가리켜 ‘에인(없다)’이라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없다’라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입니까? 평생을 교회 다녔는데도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없다면 이 얼마나 섬뜩한 말입니까?

 

이제 우리는 더 의로운 자로 살아야 합니다.(5절) 내 능력, 경험 내 신뢰, 내 의가 아닌 십자가의 능력을 의지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 인정해 주십니다. 더 가난해져야 합니다.(6절) 세상 것에 집착하는 것을 다 쏟아 버리고 우리의 심령이 더 가난해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