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성서연구 게시판 - <시편산책> 시편 10편

<시편산책> 시편 10편

2013.05.14 20:50

만천댁 조회 수:802

설교 날짜  
성경 본문 시 10:1-18 
말씀 선포자 유대식 목사 
녹음 파일  

시편산책 (시 10편)

시 10:1-18절

사람은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 잘못된 감정을 품게 되고, 잘못된 행동을 함으로써 삶을 무너뜨려갑니다. 예를 들어 몇 사람이 둘러 앉아 얘기를 하며 웃다가 웃음이 그치는 순간에, 한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순간적으로 이 사람은 모여 앉은 사람들이 자신의 험담을 하다가 자신을 보고 웃음을 멈추는 것으로 생각하고 돌아나가 버렸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이 사람이 어떤 태도를 보이게 되었는가를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품게 된 이 사람은 이후로 그 사람들과 사사건건 부딪치며 관계를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많은 경우, 우리는 환경보다는 그 환경을 바라보고 느끼는 우리의 잘못된 사고로 인해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의 잘못된 사고를 올바르게 고쳐나간다면, 우리는 환경에 대해서 올바른 감정과 올바른 행동으로 반응하게 되고, 우리의 삶을 새롭게 변화시켜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환경이 아니라, 그 환경을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면, 삶의 고통이나 어려움들이 다 사라질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신앙은 환경이 달라진다기보다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으로 삶의 고통이나 어려움들을 넘어서는 것이고, 그 가운데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나가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만 살던 사람이 미국에 가게 되면, 대한민국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유럽에 간다면, 미국과는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동일하게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만으로 살아가던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 새로운 생각과 가치관들을 접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신앙의 선배들의 조언과 간증, 하나님을 근거로 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 저렇게도 살 수 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전과는 다른 생각과 가치관들이 우리 안에 존재하게 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이 달라지고, 판단의 기준이 넓어지고, 그에 따라 우리의 삶도 풍성해집니다. 더 나아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느끼고 그 말씀이 마음속에 들어오게 되면, 우리의 사고의 폭은 더욱 넓어지고, 우리의 삶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풍성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변화에는 희생과 고통이 뒤따릅니다. 종종 우리는 어떠한 희생도 없이, 어떠한 노력도 없이 결과만을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부분을 깨뜨리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는다면,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을 부인해야 합니다. 나를 낮추고, 나를 버리고, 나를 희생함으로 십자가를 짊어지는 바로 그곳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시편은 작자 미상의 ‘개인 비탄 시입니다. 하나님을 부인하며, 세상에서 득세하는 자들의 교만과 포악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받는 핍박을 고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다윗시 139편에서 ‘내가 깰 때에도 오히려 주와 함께 있나이다.’라는 고백을 했습니다. 이는 다윗이 자신의 눈과 귀와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로 열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갔음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자신의 삶 전부를 하나님께로 집중한 다윗의 생각 안에 하나님의 생각이 들어오면서 그의 삶은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들로 채워졌습니다.

 

반면에 악인들은 ‘그 마음에 욕심으로 가득 찬 것을 자랑했고’(3절), ‘하나님께서 감찰치 아니하시고,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4절) 언뜻 보기에 저들의 길은 견고해 보였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그들에게 미치지도 않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5절-6절) 그러자 날이 갈수록 그들의 포악은 점점 더해갔습니다. 그러면서 저들은 “하나님이 잊으셨고, 그의 얼굴을 가리셨나보다고 비아냥거렸습니다.(11절)

이러한 현실을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이 오늘 시편의 시작 부분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 첫마디는 오늘 시편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결정하는 표현입니다.

 

시인이 ‘어찌하여’라고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원수들의 박해로 인해 고통 받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강림(역사)하시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말을 가리켜 LangeDelitzsch라는 성서주석가들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불신앙적인 외침 이라기보다는 하루 속히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간구하는 신앙적인 외침이라고 볼 수 있다.라고 해석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어느 한 순간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에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당장 눈앞에 펼쳐지는 억울함과 가슴 아픈 일, 이건 아닌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드는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분명한 계획이 있음을 믿고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을 향한 선한 계획을 분명히 갖고 게신 분이십니다. 그 계획을 신뢰한다면 우리는 어떤 일을 만난다 하더라도 신앙적인 시각으로 그 보든 것들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