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다보면 고생은 내가 하고 이익은 다른 사람이 볼 때가 자주 있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수고한 사람이 반드시 열매를 갖게 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을 대부분 싫어하지만 그런 삶이야말로 우리 신자들이 추구해야 할 신앙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아브라함의 신앙, 즉 복의 근원으로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기대도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눅9장에서 여러 차례 당신의 고난을 예고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을 준비하고 계시는데, 제자들은 전혀 딴 생각을 하며 주님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누가 크냐?'라는 문제로 토론을 했다는 것은 그들에게 내 공로라고 여길만한 무엇인가가 있었음을 뜻합니다. 그 공로를 내세우며 누가 높은 자리에 낮을 것인가의 문제를 놓고 토론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안에서는 '누가 크냐?'라는 논쟁 자체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인간이 가치 있게 여기는 모든 것을 무너뜨려 버립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높임 받을 수 있는 가치는 오직 예수님의 피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앞에서 내가 의롭게 여겼던 것, 내 공로로 여겼던 모든 것들이 무너짐을 당해야 진실로 십자가 앞에 섰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어찌 그리 못났느냐고 비판하기 전에 그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그런 제잗르을 향하여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세우시고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v48) 세상 질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능력 있고, 그 쌓은 업적도 있어야 큰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라는 세상과 전혀 다른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큰 자가 되기 위한 조건이나 방법을 가르쳐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나라는 세상질서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를 배워도 머리로만 배우지 말고, 가슴으로 삶으로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누가 크냐?'라는 논쟁이 아니라, 예수님이 가장 크신 분이라는 고백으로 함께 모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