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갓난아이 때의 일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유아기억상실증' 때문입니다. 무엇이든 기억에 오래 남으려면 상황을 순차적으로 정리할 줄 알아야 하고, 또 언어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유아기에는 논리적인 사고력도, 언어적 능력도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기억은 무의식세계의 어딘가로 가라앉고 맙니다. 오늘 본문은 성만찬에 관한 바울의 전승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특별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기억)하라." 고 주님이 두 번씩이나 명하셨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울 자신이 예수님을 기억하는 행위를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대목입니다. 다시 말해 성만찬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는 말씀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예수를 기억하라고 할 때, 예수의 무엇을 기억하라는 것일까요? 그것은 먼저 예수님이 당한 수치와 고난, 그리고 십자가 죽음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예수의 죽음을 기억한다는 것은 단지 그것을 떠올리라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는 사람 역시 그 고난과 치욕을 당할 각오로 살라는 것입니다. 성만찬 신앙의 중심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망각하지 말고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예수의 슬픔과 수치와 고난, 그의 죽음과 삶이 어떤 것인지,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잘 헤아려서 그렇게 살았던 예수의 행위를 지금 여기서 너희들이 확산시켜 나가라는 것입니다. 동시에 그런 일을 가로막는 세력들을 단호히 거부하고,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게 막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역사는 이른바 자기에게 이롭고 달콤한 역사만을 기억하고, 아픈 것들과 부끄러운 것들은 감추는 속성으로 발전되어 왔습니다. 그것은 '역사의식이 없는 무뇌아'와 같은 모습입니다. 기억되지 않은 사람은 완전히 죽은 사람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의 자기 삶, 그중에서도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행위들이 기억되지 않는다면 그는 죽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부끄러웠던 삶을 기념하고 기억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성만찬인 것입니다. 유대인학살기념관 야드바셈에는 이런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망각은 포로 상태로 이어지나 기억은 구원의 비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