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날한시는 아니지만 우리는 기독교신앙을 내 마음에 받아들인 사람들입니다. 신앙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기독교의 진리, 또는 예수그리스도라는 묘목(苗木)을 우리의 심령에 심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심겨져 있는 신앙의 나무를 잘 보존하고 가꾸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특히 묘목 즉 옮겨 심은 나무는 뿌리가 잘 내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토양이 중요한데, 신앙의 나무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그리고 예수그리스도에게 그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초대교회 안에는 놀라운 부흥의 역사와 더불어 기독교신앙의 뿌리를 흔드는 이단들로 넘쳐났습니다. 요한일서는 그런 이단들의 가르침을 경계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 졌습니다. "너희를 미혹하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v26) 그렇다면 그런 미혹하는 자들의 위협 앞에서 신자들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겠습니까? 그들을 만날 때마다 피해야 합니까? 아니면 상대하지 말고 무시해야 합니까? 사도요한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하리라"(v24) '처음부터 들은 것'은 진리의 복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단들이 말하고 있는그 새로운 가르침에 현혹되지 말고 이미 너희들이 받아들인 '진리의 복음'안에 머무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만이 신자인 우리가 "아들과 아버지의 안에 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믿음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복잡하게 자꾸 변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아버지와 아들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처럼 한결같은 신앙의 길을 걷는 신자들에게 약속된 것이 분명히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v25) 예수님의 약속은 '영원한 생명'하나입니다. 여러 가지를 약속하신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를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성취하신 분으로 오신 분이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오직 생명의 약속만을 바라봐야 합니다. 예수님은 생명과 함께 다른 것을 부수적으로 들고 오시지 않았습니다. 생명을 위해 오셨고, 생명의 약속을 성취하시는 분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단들의 미혹하는 말들에 현혹되지 말고, 변질 된 복음, 다른 복음에 병들지 말고, 우리가 믿은 주님을 끝까지 붙들고 나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