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90년대의 공무원이미지는 '박봉'이었습니다. 당연히 젊은이들의 미래 직업에 공무원이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공무원시험 준비생이 22만 1천명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난 통계청조사에서 보듯이, 지금은 공무원이 젊은이들의 미래직업 1순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점점 늘어나는 이 사회에 과연 미래는 있는 것인가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계가 나의 무대가 되어야 합니다. 때로는 실패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동물들의 본성은 자유인데 그 보다 더 자유로워야 할 사람이 되레 굴종하며 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모세가 자기 얼굴을 수건으로 가린 사건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출 34:29 이하에 기록된 이야기 입니다. 모세가 증거 판을 들고 시내산에서 내려왔을 때 그의 얼굴에 광채가 나자 사람들은 그의 곁에 가까이 가는 것을 두려워 했습니다. 그러자 모세는 사람들 앞에서는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수건을 벗었습니다. 모세는 왜 얼굴에 수건을 쓴 것입니까? 자기 얼굴의 영광은 일시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그것에 절대가치를 부여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늘날까지도 수건을 벗지 않은 채 말씀을 대하고 있다는 점 입니다. 여기서의 수건은 유대인들의 영적 무지와 오해, 예수그리스도를 거부하는 불신앙, 사랑이 상실된 율법주의 적 편견 등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참 자유이신 주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만듭니다. 수건이 눈을 가리고 있는데 어떻게 제대로 볼 수가 있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그리고 자유함을 방해하는 그 수건을 벗어 던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 수건은 내가 벗어던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언제면 사람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노예로 만드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바울은 그것을 '습관'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까지도'라는 것은 모세시대로부터 지금까지 즉 아무리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수건을 벗지 않은 채 말씀을 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습관적으로 말씀으 대하지 말고 이제는 주께로 돌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