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게시판 - 평화와 화해의 시도

일반 평화와 화해의 시도

2016.03.05 12:19

신전도사 조회 수:245

설교 날짜 2016-02-28 
성경 본문 엡 2:14-18 
말씀 선포자 유대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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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지난 연말과 올해 초, 우리교회에 새로 등록하신 분들이 적지 않은데 그분들이 왜 우리교회에 정착하신 것입니까? 어떤 형태의 만남(말씀, 교우, 자기성찰)이든지 간에 그 만남에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입니다. 예수그리스도와의 만남, 기독교진리와의 만남에서 어떤 의미도 발견하지 못한 신앙인들은 교회를 다녀도 공허하고, 종국에는 교회를 떠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예수님과의 만남은 내가 예수님을 마음대로 만나고 안 만나고 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를 만나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나를 마나기 우해 지금도 우리의 마음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왜 우리를 만나려고 하시는 걸까요? 구약의 하나님은 사람들을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내산에서 드디어 사람들을 만나주셨습니다. 출 19:5-6 에서 그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잘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바로, '평화의 사도 화해의 사제'가 될 것을 당부하려고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만나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도 그 목적을 가지고 부르셨습니다. (창 12:2) 예수님도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바울은 예수그리스도야 말로 우리의 참된 평화이시며, 십자가는 하나님과 화해를 이루는 도구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일생은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 들을 위해서 다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부자와 가난한 자를 화해시키고 건강한 자와 병든자를 화해 시키고, 힘있는 자들과 소외된 자들을 화해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에베소서 기자는 이런 예수님을 가리켜 "화해를 위한 희생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신학자들은 그것을 'Man For Others'라고 부릅니다. '누군가를 위하여 사는 사람, 그 무엇인가를 위해 사는 사람' 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 들은 이 땅에서 다른 그 무엇보다 이 일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도 그의 뒤를 따라서 화해와 평화의 사제 'man For Other'가 되라고 요청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