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카메라의 셔터를 자연스럽게 누릅니다. 사진을 잘 찍는다는 것은 카메라를 어떻게 작동하느냐의 문제이기도하지만, 찍고자 하는 대상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도 다르지 않습니다. 세계는 내 눈이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움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만나는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다면 그에게서 문제를 찾지 말고, 그를 바라보는 내 마음의 눈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를 의심해봐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눈이 점점 침침해집니다. 눈도 자주 비비게 되고, 안경을 자주 닦아야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요즘은 이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정확한 실체가 아니라고 여겨야 하는것은 아닌가?" 왜냐하면 내 연륜과 그에 따른 경험으로 인하여 고집스런 확신을 가질 위험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남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내 생각이 틀릴 수 있고 내가 보는 것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솔직히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도 나를 잘못보지 않고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의미에서 예수님은 오늘본문에서 "비판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은 '네가 남을 비판하면 남도 너를 비판하니까 비판하지 말라.' 는 간단한 말이 아닙니다. 너희는 모두가 죄인이기에 세상의 그 누구도 남을 비판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자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누구도 남의 잘못을 지적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단지 상대방의 죄를 의도적으로 드러내가 위해서, 내가 상대방보다 더 낫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형제의 잘못을 드러내고 약점을 공격하는 것을 금하라는 것입니다. 암담하고 절망적인 사람에게도 한 줄기 빛과 같은 작은 문이 반드시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문을 발견하는 전문가이셨습니다. 주님은 세리와 병자, 죄인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나라의 가능성을 보셨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주님의 그 눈매를 닮아야 합니다. 편견, 선입견, 두려움, 미움의 들보를 빼고 보면 귀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