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떤 사람을 보면서 '아, 저 사람은 기독교인이구나!'하고 알아차릴 수 있는 표식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십자가 목걸이, 대문에 붙여있는 교패, 승용차에 붙여있는 베드로 물고 스티커....그러한 표식들을 일종의 부적처럼 생각하는 교인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상징도 부적도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할 삶의 태도와 결단, 그리고 삶의 목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게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14절) 십자가는 수치와 죽음을 상징합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흉악한 죄인들이 달려 죽은 십자가가 아니라 흠 없는 희생양 되신 주님이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룬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십자가자랑은 많은 자랑거리 중 하나가 아니라 유일한 것이었습니다. "결코 없다"고 분명히 고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당시에 갈라디아교인들에게 박해를 피하려면 '십자가'라는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고 할례를 받으라고 회유하던 유대율법주의자들의 삶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바울은 세상 완장을 버렸습니다. 십자가의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붙잡은 바울에게 유대인들이 자랑거리로 여기는 할례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사는 것이었습니다. "흔적"에 해당하는 헬라어 '스티그마타'는 불에 달군 쇠로 동물의 엉덩이에 낙인을 찍어 소유주를 나타내거나, 노예가 특정한 주인의 소유임을 나타내는 표식을 말합니다. 이 단어가 기독교적인 용어로 사용될 때는 성흔(聖痕)이라는 뜻을 갖습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이 스티그마, 흔적들이 있어야 합니다. 나 같은 사람이 무슨 흔적?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고 있다면, 이웃의 아픔과 고통을 생각하며 함께 애통하고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