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는 ‘새로운 계명을 기록한 책’이라는 뜻이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새로운 계명이라기보다는 ‘율법의 되풀이’라고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신명기에서 다루는 율법과 역사적 내용은 모세오경의 다른 곳에서 이미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인들은 천국을 생각할 때, 그곳에서는 어떤 생활을 하는가를 궁금해 합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를 봐도 천국에서는 이렇게,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신자들에게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천국에서의 ‘삶의 방식’입니다. 즉 천국은 어떤 정신으로 살아가는 곳인가를 아는 것이 신자에게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이 들어갈 가나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쉽게, 섣불리 들여놓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 백성에게 뭔가를 가르치고 또 가르치십니다. 그러기에 신명기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는 모세가 요단 저쪽 숩 맞은편의 아라바 광야 곧 바란과 도벨과 라반과 하세롯과 디사합 사이에서 이스라엘 무리에게 선포한 말씀이니라.”(v1) 가나안을 지척에 두고 웬 공부를 또 해야 합니까? 약속의 땅 가까이 인도하셨으면 그냥 들어가게 하시면 될 일이지, 무엇 때문에 또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하나님의 법에 대한 지식의 풍성함을 위해 또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미 40년 전 호렙에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율법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 율법을 받은 사람으로서 지난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했는데, 과연 그 말씀에 맞게 살았는가를 고발하기 위해 다시 말씀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또다시 여호와의 법을 선포하시는 것은 말씀을 통해서 과거를 해석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백성이 여화와의 법을 받은 자로서 그 삶이 어떠했는가를 다시금 말씀으로서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이방인과 똑같이 악한 자이고 말씀에 실패한 자임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자손들은 우리는 가나안 족속보다 더 낫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직도 하나님의 마음을 너무도 모르는 태도입니다.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연약함과 부족함과 실패를 모르는 사람은 요단강을 건너기도 예전 모습 그대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나라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