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게시판 - 그런 사람이고 싶다.

일반 그런 사람이고 싶다.

2024.09.23 09:44

만천교회 조회 수:25

설교 날짜 2024-09-22 
성경 본문 요한일서 4:7-11 
말씀 선포자 유대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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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 중에 하나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신앙인들은 사랑이라는 말을 세상의 상식수준에서 이해합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과의 관계성 속에서 사랑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휴머니즘에 의한 것을 사랑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의 사랑은 하나님의 존재방식입니다. 사도요한은 오늘본문에서 죄인들과 가난한 자, 그리고 포로 된 자와 눈먼 자를 찾아오신 하나님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그리고 그 사랑이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셨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v9) 하나님의 독생자가 이 땅에 구원주로 오시기 전의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단절되고,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이루셨고, 이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죽은 인간을 생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니 사도들과 초대교회교인들이 그 은혜를 생각할 때, 전능하신 하나님,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라는 고백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고백이 왜 흘러나오지 않았겠습니까? 사람들은 내가 어느 누구의 모든 것을 알고,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것을 마치 큰 자랑거리라도 되는 냥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몰라도 되는 것을 굳이 내가 알 필요도 없고, 다른 사람에게 알게 할 필요는 더더욱 없습니다. 사랑은 그 사람에 대하여 모르는 게 있어야 합니다. 알 수 있지만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은 공개가 아니라 덮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덮어주시기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속 깊은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요한사도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v11) 이 시대의 비극은 마땅한 것을 모르고, 마땅한 것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고 또는 알려고 하는 ‘전능함’을 버리고, 모르고 있다면 굳이 알려고 하지 말고, 몰라도 되는 것들을 너무 많이 알려고도 하지 말며, 알고 있지만 들춰내지 말고, 알아도 말 못하고,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살짝 눈감아 주기도하면서 기다리는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