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다보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순간을 맞이하면 사람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환경이나 조건이 좋은가 나쁜가?, 내게 이로운가? 해로운가?, 득이 되는가? 손해가 되는가?’등이 일반적인 기준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것이 삶의 원칙이 아니었습니다. 빌립보서는 바울이 로마에서 죄수로 있을 때 지은 옥중서신입니다. 바울은 현재 ‘매여 있는’ 상태입니다. 감옥에 갇히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노하며,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든 사람들을 향하여 원망의 마음을 갖습니다. 그러나 바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내가 어느 장소에 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느냐의 문제였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v12,13) 여기서 ‘복음전파의 진전’이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새로운 문이 열렸다’는 의미입니다. 신자는 삶에 대한 인식부터 세상 사람들과는 달라야 합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삶의 의미는 자신의 성공입니다. 무엇 때문에 나에게 삶이 주어졌는지는 묻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자의 삶은 그 시작부터가 다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은 예수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삶의 의미를 생각할 수없는 존재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았습니까? 감옥에 갇혀있지만 그것이 복음전파의 진전을 가져온 것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이러한 바울을 통하여 오늘 우리에게 있어야 할 삶의 자세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당하는 모든 일을 복음이 전파된다는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육신의 시각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지 말고 복음이 전파되는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시각이 바뀌면 우리는 세상을 아무렇게나 살 수 없습니다. 바울은 복음전파에 진전이 일어났다는 것, 즉 자신으로 인해서든 다른 사람으로 인해서든, 선한 뜻으로든 다소 나쁜 뜻으로든, 복음전파의 진전이 일어난 그 자체가 큰 기쁨이었습니다. 돈을 많이 벌고, 높아지고, 유명해지고가 아니라,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바울의 첫 번째 삶의 원칙은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는가?’였습니다. 바울이 제시한 삶의 원칙이 이제부터 저와 여러분의 것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