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의 절망은 ‘신자로 살고 하나님백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교인들이 많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오늘본문의 마리아는 자기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매우 놀랐습니다. 그리고 주신 말씀을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를 안심시키며 믿기 어려운 말씀을 전해주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30b-32a) 하지만 과연 마리아에게 전해진 소식이 은혜와 평안이 되는 소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처녀인 마리아가 아이를 잉태한다는 것은 그 인생 전체를 무너뜨리고 엉망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그런데 왜 가브리엘은 마리아를 은혜를 받은 자라고 일컫는 것입니까? 여기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육신적인 문제를,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빌 1:29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은혜는 나를 위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은혜를 주시고 힘을 주시는 이유는 고난의 길을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오늘말씀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눈에 띤 단어는 ‘잉태’였습니다. 신자는 참 생명이신 예수님을 내 안에 모신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생명의 씨앗을 내 안에 잉태한 사람입니다. 잉태했다면 당연히 출산해야 합니다. 천사가 예언한대로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대다수의 신앙인들이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죄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 안에는 예수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 처리하지 못한 욕심이 있고, 그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기 때문에 예수생명이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대강절을 맞이하여 이제는 예수생명을 품고만 있지 말고,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로 빚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로 인해 다른 사람들도 예수를 잉태하고 하나님의 아들로 탄생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