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과학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별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도대체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라는 의문부터 갖습니다. 과학적 사고방식에 어긋납니다. 그래서 예수의 부활은 제자들의 환상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생명의 깊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자기가 경험한 세계를 뛰어넘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부활은 온전한 생명으로 변화하는 사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오늘 우리의 과학적인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절대적인 세계는 인간이 물건을 만들 듯이 그렇게 앞뒤가 똑 떨어지게 검토해서 증명되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적인 세계, 즉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계시(啓示)는 그분이 우리에게 알려주신 것만큼 조금씩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성서기자들의 경험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오늘본문은 무덤에 장시지낸바 된 예수님이 살아나셨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열심히 주님을 따라다녔습니다. 유대종교지도자들도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은 인간의 열심은 부질없다는 것과 천국은 우리 능력으로 갈 수 없다는 것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종교열심에 빠져있고, 교인들에게도 종교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은 자기신앙, 자기열심을 버리는 ‘자기포기’가 있는 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활신앙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를 외치며 사는 것이 부활신앙이 아니라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 곧 죽은 자로 사는 것이 부활신앙입니다. 세상 모든 것에 대하여 죽은 자로 사는 것입니다. 돈에 대하여서도, 권력에 대하여서도 죽은 자로 살아야 합니다. 대접받고 인정받고 높임 받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도 죽은 자로 살아야 합니다. 내가 죽어야 그 죽음이라는 베이스(Base)에 창조주하나님의 고유한 권능이 개입될 수 있고, 바로 그곳으로부터 우리의 부활생명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인 우리들이 늘 점검해야 할 것은 ‘나에게 열심히 있는가?’가 아니라, ‘내가 십자가의 길을 가고 있는가? 내가 끊임없이 죽고 있는가?’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