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잠실에 123층, 555m의 국내최고층빌딩이 거의 완공단계에 있습니다. 큰 건물을 지어놓고 동양최대, 아시아 또는 세계최대라고 떠벌리는 것은 우리의 고질병입니다. 아마도 그것은 오랜 세월동안 작아질 대로 작아진 우리의 과거에 대한 몸부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확장하려는 욕구, 커지려는 욕구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공통적인 소망입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룩소르의 거대한 신전들, 요르단의 페트라, 바벨론의 공중정원, 중국의 만리장성등은 모두가 자기 민족의 위대함을 과시하기 위한 건축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시대에도 거대한 건축물을 통한 자기과시를 거부한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그리스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철학과 시와 희곡을 통해 자기들의 위대함과 탁월함을 표현하려 했습니다. 이들이 추구했던 것은 눈에 보이는 '사물의 크기'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정신의 크기'였습니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너무 작아졌습니다. 마음은 옹색해지고 전망은 협소해졌습니다. 정신의 크기는 날이 갈수록 작아지고 있습니다. 말로 다 할 수 업는 고난을 겪은 욥의 간절한 소망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세 친구의 위로는 오히려 혼란스러움을 가중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겪는 부당한 현실에 대해 하나님으로부터 납득할 만한 설명을 듣고 싶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욥의 소망대로 하나님이마침내 그에게 임하셨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욥은 하나님께서 쏟아내시는 예상치도 못한 질문 앞에 서면 자신의 유한함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할 말을 잊기도 합니다. 그러나 말이 끊어진 바로 그 자리야 말로 하나님의 현존을 경험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프로그램이라는 말은 '미리 써놓은 것, 미리 그려 놓은 것'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프로그램을 알지 못했습니다. '고난'이라는 악기를 가지고 내가 무엇을 연주해야 하는지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왜 내가 이런 고통을 당해야 되느냐?"고 비명을 질러댔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큰 세계를 보여주셨고, 그것을 통하여 욥은 무한을 만났습니다.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무한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