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에서 가장 먼 곳이 어디입니까? 바다 건너에 있는 섬들을 제외하고는 전라남도지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여행이라면 먼 거리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한 미래를 향하여 주님과 함께 하는 여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인들에게 가장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은 괴롭고 짜증나고 고달프다는 말입니다. 예배를 드려도 기쁨과 감동이 없다는 말도 자주 듣습니다. 왜 이처럼 삶에 기쁨이 없는 것입니까? 그것은 삶의 방향성, 즉 목표를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삶의 목표를 잃어버리는 것 이외에 또 하나의 문제는 하나님의 현존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과연 존재하시는가? 존재하시다면 나아게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이러한 생각의 지배를 받으면 그 심령에 기쁨과 감동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겨에서 우리는 그 백성과 늘 함께 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한마디로 "너는 나만을 생각했으면 좋겠구나."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 마음을 깊이 깨달은 신앙의 위인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오늘본문의 에녹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두번씩이나 반복되는 어구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했다."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그가 행한일 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성경을 아무리 뒤져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다." 여기에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의 삶은 어떤 신비적 경험, 수도원에서 도를 닦는 행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먹고 마시는 일상생활 가운데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삶 전체를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삶으로 알면서 날마다 순간순간마다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고백이 바로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다."는 기록속에 담겨져 있는 에녹의 모습입니다. 통전적(通典的)인 (전체를 하나로 묶어서 사고하는)신앙의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이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