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축복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축복(祝福)의 본래 의미는 내가 무엇을 받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복을 빌어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께서 저에게 맡기신 일은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12:3) 나의 존재함이 다른 이들에게 복이 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바울의 축복기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 13절 말씀은 오늘날 교회에서 행해지는 축복기도의 원형이 된 말씀으로 교회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먼저 사도바울은 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가 모든 성도들과 함께 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기전에도 그는 진리를 위한 열정에 사로잡힌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좀처럼 내적인 자유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의 빛이 그를 어루만졌을 때 그는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구원에 관한 일은 내 의지와 결심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은혜입니다. 사도바울은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먼저 하는 사랑'입니다. '희생의 사랑,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변하지 않는 사랑'이요 '크고넓은 사랑'입니다. '뜨거운 사랑'이요 '예비하시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착해서라기보다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창조해 주신 사랑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도바울은 성령의 교통하심을 빌고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을 신명나게 하도록 하는 '힘'입니다. 사도행전은 " 오직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을 시작으로 성령이 임한 자들이 어떻게 증인 된 삶을 살았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삼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그리고 교통하심 가운데 살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이 거두는 삶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바울은 11절에서 기쁨, 온전하게 됨, 위로, 마음을 같이함, 평안을 소유한 사람이야 말로 하늘의 축복을 받은 사람임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축복의 통로'로 살아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