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산책> 시편 8편
2013.05.08 15:53
설교 날짜 | |
---|---|
성경 본문 | 시 8:1-9 |
말씀 선포자 | 유대식 목사 |
녹음 파일 |
시편산책 (시 8편)
시 8:1-9절
시인 윤동주는 누구보다도 하늘과 별을 바라보며 노래했던 사람입니다. 그의 시를 다 알지는 못해도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나오는 '서시(序詩)'는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 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서시(序詩)'뿐만 아니라, 윤동주 시인의 시 가운데는 하늘, 바람, 별이라는 단어들이 특히 많이 등장합니다. 시집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이고, '남쪽 하늘' '창공' '별 헤는 밤'은 그의 대표적인 시들입니다. 그것을 보면 그가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하늘을 바라보며 인생을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 밤하늘의 빛나는 별들을 바라보며 자랐습니다. 여름밤이면 마당에 모깃불을 지펴 놓고, 멍석을 깔고, 거기 앉아 더위를 식히면서 쏟아질 것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별들을 헤아리다 잠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젊은이들은 기타를 치며 '저 별은 나의 별 이 별은 너의 별'을 노래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시골이 아니고서는 별 구경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새장 같은 아파트에 갇혀버린 도시의 사람들은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밤하늘을 보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인간은 하늘을 보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그리스어로 '안드로포스'라고 합니다. 이 말은 '위를 보고 걷는 동물'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동물들이 기어 다니면서 아래를 바라보고 살도록 되어 있는데, 유독 사람만이 위를 보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지으실 때 기어 다니는 존재가 아닌 직립인간으로 지으신 것입니까? 그것은 하늘을 바라보며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모름지기 인간이라면 하늘을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하늘을 보고 살라는 말은 하늘에 관심을 두고 살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본질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현대인들은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 않습니다. 물론 공해로 인하여 별들이 보이지 않기도 하지만, 하늘을 쳐다보며 살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청소년들은 컴퓨터 게임에 빠져 가상공간은 자주 들여다봐도 하늘은 보지 않습니다. 주부들은 텔레비전 상자 속은 매일 들여다봐도 하늘을 쳐다보며 살지 않습니다. 하늘을 보며 살아야 할 인간이 하늘을 바라보지 않으니 내가 누구인지를 알 턱이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조물주가 누구이고 자신이 피조물인 것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다윗은 하늘을 바라보며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쫓기는 상황 속에서도 초장에 누워 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별과 달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시 8:1) 다윗은 깊은 밤 초장에 누워 하늘의 아름다움만을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늘에 가득한 창조의 권능과 주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 권능과 영광에 비할 때, 인간의 유한함과 미천함을 보았습니다.(3-4절)
사람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의 인생의 모습이 달라집니다. 자기존재를 존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존재를 비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작은 일이 맡겨져도 감당하지 못합니다. 자기 자신을 높게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는 말 중에는 '자부심'과 '자만심'이 있지만, 이 둘은 엄연히 다릅니다. '자부심'은 '자기 존재에 대한 신성한 자존심'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만심'은 '자기로부터 오는 우월감'이며, 그 결국은 자기 자신을 파멸시킵니다.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데에는 두 가지의 시선이 있습니다. 하나는 상대적인 기준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절대적인 기준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끊임없이 낙심시키고 좌절시키는 것은 상대적인 기준을 가지고 자신을 바라보는 것 때문입니다. 재력을 비교하고, 학력을 비교하고, 외모를 비교합니다. 그러다가 스스로 자기 자신을 열등한 존재로 비하시키면서 낙심하고 좌절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대상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나를 세상에 둘도 없는 존재인 '나'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본문 속에서의 다윗의 고백은 '나라는 존재는 하나님께서 생각하시고 돌보시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잊지 않으시는 존재입니다. 더 나아가서 나는 우주만물 중에서 가장 뛰어나며 하나님보다 조금 못한 존재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절대적 기준인 인간 본래의 모습입니다. 이 본래의 모습, 본래의 존재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은 하늘을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땅을 쳐다보며 살면 근심과 절망과 불안이 떠나지 않습니다. 한숨과 탄식이 끊이지 않습니다. 생각은 좁아지고 짜증과 불만이 터져 나오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늘을 바라보고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면 마음이 넓어집니다. 그릇이 커지고 불안이 사라집니다. 순간보다 영원을 사모하게 됩니다. 절망 중에서도 하늘의 소망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골로새서 3:1-2에서 "위의 것을 찾으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8 | <시편산책> 시편 18편 | 만천댁 | 2013.10.02 | 956 |
17 | <시편산책> 시편 17편 | 만천댁 | 2013.09.26 | 1117 |
16 | <시편산책> 시편 16편 | 만천댁 | 2013.09.26 | 891 |
15 | <시편산책> 시편 15편 | 만천댁 | 2013.09.25 | 702 |
14 | <시편산책> 시편 14편 | 만천댁 | 2013.09.25 | 792 |
13 | <시편산책> 시편 13편 | 만천댁 | 2013.06.03 | 846 |
12 | <시편산책> 시편 12편 | 만천댁 | 2013.05.28 | 909 |
11 | <시편산책> 시편 11편 | 만천댁 | 2013.05.21 | 883 |
10 | <시편산책> 시편 10편 | 만천댁 | 2013.05.14 | 802 |
9 | <시편산책> 시편 9편 | 만천댁 | 2013.05.10 | 1248 |
» | <시편산책> 시편 8편 | 만천댁 | 2013.05.08 | 837 |
7 | <시편산책> 시편 7편 | 만천댁 | 2013.05.06 | 789 |
6 | <시편산책> 시편 6편 | 만천댁 | 2013.05.04 | 1024 |
5 | <시편산책> 시편 5편 | 만천댁 | 2013.05.03 | 851 |
4 | <시편산책> 시편 3편 - 4편 | 만천댁 | 2013.05.02 | 1301 |
3 | <시편산책> 시편 1편 | 만천댁 | 2013.05.01 | 1194 |
2 | <시편산책> 시편 2편 | 만천댁 | 2013.05.01 | 674 |
1 | 수요성서연구 게시판이 개설되었습니다. | 만천교회 | 2013.04.28 | 551 |